‘최악의 폭력 십자가는하나님의 용서가 이루어진 공간’

학폭(학교폭력)은 어떤 이유로라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징계는 가해자의 미래를 내다보고 이루어져야 합니다.

오래 전 일이지만 필자는 중학교 2학년을 시작하면서 태권도부에 등록을 하고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태권도를 배우는 것이 좋았지만  고등학교 선배들로부터(중학교와 고등학교가 붙어있는 학교였음) 기합을 준다는 명목으로 폭력을 자주 당하여 태권도부가 싫어졌습니 다.  그래서 고등학교에 올라가자마자 태권도부를 떠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태권도를 계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더 큰 위협과 폭력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다행이 큰형님의 개입으로 태권도부를 무사히 떠날 수 있었습니다.   60대 후반에 있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유쾌하지 않습니다.

요즈음 한국에서 학폭 뉴스로 떠들썩합니다.  남녀 프로배구 선수들이 가해자였다는 사실이 잇달아 폭로 되면서입니다.  여론의 비난에 못이겨 소속 구단은 이들에게 무기한 출장정지 징계를 내렸고, 배구협회는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했습니다.  폭력 방지 문화 정착이나 시스템 확립에 실패한 스포츠계가 여론의 추이를 눈치보다 내린 징계라 뒷맛이 개운하지 않습니다.  한 언론에서는 이번 학폭 사건의 흐름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①가해자가 유명해지고 주목받는다 → ②피해자가 오래전 고통을 떠올린다 → ③소셜미디어 (SNS)로 폭로에 나선다 →  ④여론이 악화되고 가해자가 사과한다 → ⑤뒤늦게 징계가 내려지거나 퇴출된다.”

그동안 한국 스포츠계에 폭력이 만연해 있었음은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이번 기회를 학폭뿐 아니라 스포츠계 전반에 걸쳐 폭력을 근절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물론 가해자들에게는 적절한 징계가 따라야 하겠지요.  그러나 학폭 가해자가 특히 초.중학교 때의 가해자가 성년이 된 지금 너 같은 가해자는 평생 고통받으며 살아야한다고 하며 그들의 커리어를 송두리째 망가뜨리고자 하는 시도는 단지 보복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릴 때의 잘못이기 때문에 무조건 눈감아 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닙니다.   어릴 적의 잘못을 가지고 그들의 많이 남아있는 인생을 회복 불가능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악랄한 폭력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이 우리가 이런 폭력적인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용서하시고 사랑하신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하는 공간입니다.  학폭 피해자가 상처를 잊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이명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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