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 시대의 구제는 교회의 사명입니다’

금년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으로 시작하여 그 끝을 모른채 한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모든 일상들이 변했습니다.  교회, 학교, 일터, 식당, 상점 등 대다수 분야의 일상들이 변했습니다.  우리교회는 자체 예배당이 없는 관계로 3월 말부터 online으로만 예배하고 있습니다.  뜨겁게 함께 찬송하며 예배하고 식탁 주위에서 훈훈하게 교제하는 모습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대학 캠퍼스는 젊은이들로 화사하고 역동적이어야 하는데 이번 해처럼 스산하고 텅 빈 적은 없었을 것입니다.  봉쇄된 캠퍼스와 강의실에는 있어야 할 학생들이 없습니다.  Office 빌딩들도 매 한가지입니다.  드나드는 사람들로 붐벼야하는 일상이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일상의 변화는 적응해 가면 됩니다.  문제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급속히 늘어났다는데 있습니다.  소형 식당과 소형 사업체의 대다수는 문을 닫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직장을 잃었습니다.  사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사람들은 취약계층입니다.  직업을 잃거나 사업을 접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이 더욱 고통을 받게 됩니다.  이들을 도와야 합니다. 

성경에는 어려운 이웃을 도와준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한 예로, 남편을 일찍 잃은 룻이라는 여인은 자신과 역시 과부인 시어머니 나오미의 먹을 양식을 구하기 위해 보리 이삭 줍기를 하러 들로 나갔습니다.  이를 알게된 보아스라는 인물은 추수하는 일꾼들에게 룻이 이삭 줍기를 하는데 방해하지 말며 일부러 이삭을 흘리라고 명령하여 룻을 구제했습니다.

“… 저 여인이 이삭을 주울 때에는 곡식단 사이에서도 줍도록 하게.  자네들은 저 여인을 괴롭히지 말게. 그를 나무라지 말고, 오히려 에서 조금씩 이삭을 뽑아 흘려서, 그 여인이 줍도록 해주게.”(룻 2:15b-16, 새번역)

보아스는 가진 자로서 룻을 도와주었습니다.  하지만 가진 자만 어려운 이웃을 도와야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어려워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구제는 하나님 나라의 핵심 가치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마음이 교회나 성도를 통해 실천되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구제는 사람의 선한 행위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어려운 시기에는 더더욱 교회가 나서야 합니다.  교인들 또한 앞장 서 어려운 이웃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행동으로 나서야 합니다.  우리교회가 Food Pantry 기관인 The Friendship House 에 얼마의 돈을 기증했습니다.  도울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더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교인이 동참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잠 11:25) -이명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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