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끝의 폭력’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하인리히 뵐은 1974년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라는 제목의 소설을 출간합니다.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27세 가정관리사 카타리나 블룸은 축제 때 괴텐이라는 한 남자를 만나 사랑하게 됩니다.  하지만 괴텐은 경찰에 쫓기는 범법자였고, 블룸은 경찰과 언론의 감시망에 걸려들게 됩니다.  경찰 조사 중 블름의 가족사, 개인사, 결혼사, 경제 능력 등이 언론에 노출되었고, 언론은 악의적으로 이런 것들을 왜곡하거나 과장하여 보도함으로 그녀의 인격과 명예를 처참하게 짓밟아버립니다.  카타리나 블룸은 언론의 사실과 다른 보도로 자신의 명예와 인생이 회복하기 어렵게 망가진 것에 크게 분노하고, 결국 그 기사를 쓴 기자 퇴트게스를 총으로 살해한 후 자수합니다.  작가 하인리히 뵐은 이 소설을 통해 살인이라는 명백한 폭력을 초래하게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폭력 즉 황색저널니즘의 횡포와 폭력을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황색언론이 파괴적이지만 SNS시대인 오늘날 일부 누리꾼들이 밀실공간에서 손가락 끝으로 폭력을 손쉽게 행사하는 것도 못지않게 파괴적입니다.  그들은 개인 정보 폭로, 사실 왜곡, 조롱, 욕설, 비열한 공격 등을 가합니다.  또한 집단 따돌림과 성적 놀림을 합니다.  이같은 폭력들은 한 개인의 인격과 명예 그리고 자존감에 회복 불가능한 손상을 입히기도 합니다.  그리고 SNS상에서의 폭력은 시간과 장소에 제한 없이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도 계속되기 때문에 그 폭력의 파괴력이 더욱 커집니다.   한국에서 연예인들이 자주 자살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사이버공간에서의 인격 살인, 명예 살인에 의한 것으로 이는 이런 폭력의 파괴성을 증명해 줍니다.

싸이버공간 상에 올린 글이 짧을지라도 그 글은 쓴 사람의 인격입니다.  숨은 공간에서 손끝으로 폭력을 가하는 글을 쓰는 것은 드러남을 두려워 하는 폭력적인 인격의 소유자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런 비겁한 행위는 결국 자기의 인격을 공격하는 것이고 따라서 자신의 인격을 스스로 더욱 망가트리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글은 또한 쓴 사람의 내면세계의 언어입니다.  남의 명예를 실추시키거나 인격에 상처를 주는 글을 쓰는 것은 자신의 내면세계가 불안정하고 불만으로 가득 차 있음을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그러므로 손끝으로 폭력을 가하는 사람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면세계의 언어는 글뿐 아니라 입을 통해 말로 밖으로 표출됩니다.  그래서 속가락 끝의 폭력은 곧 말의 폭력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SNS 시대에 사는 우리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인들에게 준 말에 대한 권면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남을 해치는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마십시오.  오히려 기회 있는 대로 남에게 이로운 말을 하여 도움을 주고 듣는 사람에게 기쁨을 주도록 하십시오.”(엡 4:29, 공동번역개정판)  그러기위해 우리는 먼저 속사람을 복음으로 정화시켜야 합니다. -이명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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