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진노와 예수님의 고통’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의 죽음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나의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주십시오”하고 기도하셨는데 세 차례(마 26:39-44) 같은 내용을 반복하셨습니다.  소크라테스를 사형할 때 독이 든 잔이 주어졌듯이 고대에서는 잔이 사형 집행을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잔은 일반적인 죽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사법상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기도에서 잔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신 것은 자신의 사법상의 죽음 즉 십자가 처형이 임박했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이 잔은 인간의 악행과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사법적 진노를 의미합니다(겔 23, 사 51).  예수님이 이 잔을 언급하신 것은 자신이 온 인류의 죄와 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셨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사법적 진노를 대신 받아야 했음을 확실히 아셨던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법적 진노는 이튿날 십자가에서 남김없이 부어졌고 예수님은 이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라고 부르짖으셨습니다.

의문이 생깁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으로 기도하러 가실 때의 장면에서 “고민하고 슬퍼하셨다”(마 26:37)는 표현과 세 번이나 잔을 지나가게 해 달라는 기도와 십자가상에서의 부르짖음은 ‘예수님이 죽음이 두려워 몸부림치시지 않았는가?’하는 의문입니다.  많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사자 밥이 되면서도 찬송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화형을 당하면서도 초연함을 잃지 않고 오히려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신앙의 주체이신 예수님이 이들과 다르게 죽음에 반응하셨다니요?!  아닙니다.  오해입니다.  예수님은 죽음 자체를 조금도 두려워하시지 않았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스스로 십자가의 죽음으로 나아가셨습니다.

누구도 예수님과 같은 죽음에 직면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의 죽음은 온 인류의 악과 죄에 대한 하나님의 사법적 진노가 그에게 임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죄와 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우주적인 무게로 예수님에게 임할 때 그의 내면과 영혼은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상에서 일시적이지만 하나님과의 교제를 잃고 그로부터 완전히 단절되는 뼈를 깎는듯한 심통이 예수님을 엄습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와 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무시무시한 진노를 맛보신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열렸습니다.  할렐루야! -이명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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